최근 서양 고전 ‘오디세이’를 다시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1976년 창간된 프랑스의 여행·환경잡지(GEO)에서 이 단어를 본 것이 계기였다.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 무렵에 지은 이타카(Ithaca)의 왕 오디세우스의 무용담인데 트로이 원정에 성공한 뒤 고향에 돌아오기까지 겪은 10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권에 도전하는 귀족들의 권모술수로 곤경에 처한 아들 테레마코스 이야기,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한 남자들에 대한 복수 등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작품은 풍부한 신화·전설의 소재와 극적인 구성 요소를 갖고 있어서 서양문명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평가받아 왔다. 예전부터 그리스 신화와 더불어 오디세이는 유럽인들이 꼭 알아야 할 작품 중 하나였다.
작년 10월 프랑스 마르세이유 항구에서 한 척의 배가 출발했다. 이름은 플라스틱 오디세이(Plastic Odyssey)호. 길이는 40m 남짓 하지만 첨단 해양연구시설을 갖춘 이 배는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을 넘고 태평양을 건너는 3년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플라스틱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재활용을 연구하는 최첨단 실험을 위한 대장정이었다. 오디세이호는 실시간으로 중계되는데 현재 남미대륙 북동해안을 순항중이다.
플라스틱 오디세이호는 대양의 플라스틱 오염과 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배는 단순히 청소를 위한 선박이 아니라 재활용을 위한 실험을 주요 임무로 한다. 그동안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대응이 청소 위주였던 것에 비해 인근 지역에 적절한 플라스틱 재활용 인프라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플라스틱 오디세이는 배 이름인 동시에 이를 운영하는 조직 이름이기도 하다.
이 배는 세계 플라스틱 오염의 90%를 차지하는 해안을 따라 항해하며 현장 방문, 세미나, 실험 등을 통해 재활용 인프라를 제시하고 지역 개발을 협의한다. 이를 위해 항로를 따라 30개 항구에 멈춘다. 이 배는 연료로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20명의 승무원들은 과거를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다음 세상을 위해’ 항해 중이다.
오늘날 플라스틱 폐기물은 1분마다 19톤씩 바다로 쏟아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플라스틱 생산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과 2019년 사이에 플라스틱 생산량은 두 배가 늘어나 4억 6천만톤에 달했으며 2050년까지는 몇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산업용 플라스틱 알갱이(GPI)’가 유입되면서 바다는 급속히 오염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50년부터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폐기물이 더 많을 것이라고 유엔은 예측한다. 태평양에 떠 있는 ‘플라스틱 덩어리(Garbage Patch)’는 한반도의 7배가 넘는 면적(160만 ㎢)으로 ‘제7의 대륙’이라 불리고 있다.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은 1% 미만이 표면에 떠 있고 나머지는 바닥으로 가라앉거나 미세 플라스틱의 형태로 해양생물에 흡수되어 먹이 사슬로 다시 퍼지게 된다.
호메로스는 모든 사물과 사건들은 인과법칙이 있고, 세상은 이 법칙에 의해서 돌아간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플라스틱 오염은 인간의 탐욕이 남긴 누적된 인과관계의 결과물이다. 이번 항로에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바다의 플라스틱 오염이 덜해 빠져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오염에 따른 기후 변화와 미세 플라스틱의 섭취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일상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것부터 실천해야 할 시점이다.(2023.6.13, 스픽스http://www.speak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