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지(夏至)다. 일 년 중 가장 해가 길어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다. 음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우리의 세시 풍속과는 달리, 하지는 태양력 기준으로 하며 24절기 중의 열 번째이다. 기상학적으로 보면 여름은 6월부터 8월이지만 천문학적으로는 오늘부터 여름이 시작된다.
태양력이 중심이었던 서양에서는 많은 절기 중에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 가장 차이가 컸던 하지와 동지를 중요시했다. 태양이 적도에 위치할 때를 분점(equinox)이라 부르는데 춘분과 추분이 해당된다. 밤낮이 가장 긴 동지와 하지는 지점(solstice)이라 하고 해(sol)가 ‘멈추어 있다(sistere)’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날은 마치 해가 멈춘 것 같다고 붙인 이름인데 동지와 구별하기 위해 하지는 ‘6월의 지점(june solstice)’이라고도 불린다.
태양은 많은 문화권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영국 남부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기원전 2500년경 건설된 스톤헨지도 그중 하나다. 이곳은 높이 7m 정도의 거석 5쌍을 중심으로 4~5m의 입석 30개가 말굽 모양을 이루고 서 있어 장관을 이룬다. 하지와 동지 때 태양이 비추는 방향과 일직선이 되도록 배치해 놀랍다. 스톤헨지는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태양과 연관이 있고 ‘화합과 축제’의 장소였다고 알려져 있다.
역사책에서나 보던 스톤헨지가 20세기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내부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은 사람들의 꿈이었다. 일반인이 스톤헨지를 찾았고 훼손이 심해지자 영국 문화재청에서는 1985년부터 내부 관람을 금지했다. 마침내 2013년 인프라를 정비하고 예약자에 한해 관람을 허용하면서 스톤헨지는 책이 아니라 직접 들어가서 볼 수 있게 되었고 특히 하지에는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일조량이 부족한 북유럽에서는 하지를 국경일로 지정하는 경우도 많고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특히 스웨덴의 하지 축제(Midsommar)는 대표적인 여름 행사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최근 프랑스에서 시작된 하지 축제는 색다르다. 1982년 자크 랑 문화부 장관은 국민의 화합을 위해 하지에 음악 축제(Fete de la Musique)를 개최했다. 이날은 전문 음악가뿐만 아니라 아마추어들도 콘서트를 열고 청중들에게 다양한 음악을 선사했다. 모든 공연은 재능기부이고 관람은 무료라는 점이 흥미롭다.
오늘날 하지의 음악 축제는 120개 국가와 1천개 이상의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음악 축제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아마추어들도 공연할 수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초기에는 소음 문제로 약간의 논란도 있었지만 장소와 시간을 조정한 것이 성공 요인이다. 또한 관광객들이 음악을 더 즐기도록 식당과 카페의 영업시간을 늘리고 안전에 대비한 것도 널리 확산된 요인이다.
음악 축제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프랑스는 이를 바탕으로 박물관·미술관의 무료 개방(1983년), 무료 영화제 실시(1985년) 등으로 ‘문화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문화는 국력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민관이 협력해서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전통을 만들고 있다.
우리도 다양한 지역축제가 열리지만 개성을 살린 것이 많지 않다는 평가다. 이제 우리도 화합과 축제의 상징으로, 나아가 다양한 음악의 향기를 맡도록 ‘한여름 밤의 꿈’을 위한 축제를 구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히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은 대구·경북지역에서 이를 처음으로 도입한다면 한국문화의 글로벌 확산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2023.6.21,영남일보)
[출처] (칼럼) 하지와 음악축제|작성자 dolce v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