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주판이 사라졌다. 개인교습을 위한 학원이 거리마다 있을 정도로 인기있던 주판은 전자계산기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눈금이 있는 체중계와 온도계도 사라지고 있다. 세상의 많은 기계와 장비들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주판과 눈금 저울, 액체 온도계 등은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라틴어 디지트(Digit)에서 유래한 디지털은 ‘사람의 손가락’을 뜻한다. 이는 숫자를 셀 때 손가락이 아주 분명하고 편리함에서 출발한다. 디지털은 중간값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정보를 정확한 숫자로 변환하는데 사용된다. 1964년 벨 전화연구소는 신호체계를 단순화하기 위해 0과 1의 2진법을 사용하면서 디지털이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오늘날 일반화되었다.
연구에 따르면 1986년까지는 세계 정보 저장기술에서 디지털이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이었지만 2002년부터 인류는 아날로그 보다 디지털로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2년을 디지털 시대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 뒤로도 수많은 디지털 기기들과 제품들이 발명되었고 2007년 이후로는 디지털로 정보를 저장하는 비율이 94%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화가 대세가 되면서 디지털 정보의 전달 수단도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통신기술(ICT)은 데이터의 수집·가공·저장·검색·송신 등 정보의 유통과정에 사용되는 기술 수단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ICT 기술을 활용하면서 업무 효율화가 가능해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품질 향상을 목적으로 널리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ICT화는 다양한 데이터의 이동을 자동화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최근 아날로그가 어려운 부분까지 디지털화하는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도입도 확대되고 있다. DX는 자동화는 물론 기업 내부와 외부 고객, 협력사를 대상으로 하는 업무의 효율화를 목표로 한다. 또한 DX는 인공지능·사물인터넷·클라우드 등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제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게 된다. 게다가 ICT기술이 집중하던 생산성 향상, 원가 절감만이 아니라 인간과 제품, 정보까지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시장과 가치를 만드는 네트워크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전환은 아날로그 형태를 디지털 형태로 변환하는 ‘전산화(digitization)’를 거쳐 업무 프로세스의 ‘디지털화(digitalization)’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의 많은 기업들은 스마트 팩토리라는 전산화 단계를 지나 디지털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과거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탈피해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고객만족도는 물론 수익성도 높이기 위해 업무·조직·기업 문화의 변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은 2022년 10월 발표한 디지털 경쟁력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64개 국가중 8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21년 12위에서 4단계 상승한 것이다. 평가 대상인 3가지 큰 항목 중에서 미래준비(Future Readiness)는 2위를 차지했지만, 기술은 13위, 지식은 16위에 머물렀다. 이는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디지털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지를 잘 보여준다.
세부적으로 보았을 때 온라인 참여·전자상거래(1), 전자정부·전자계약(2) 등에서는 탁월한 평가를 받았으나 국제경험(59), 여성연구인력(53), 교육지출(42) 등에서는 아직도 최하위권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가 주도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해왔으나 이제는 민간의 역동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디지털 전환은 특성상 개별기업의 노력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대기업과 협력중소기업은 물론 개별 산업과 경제 생태계의 경제 주체들이 디지털 전환을 위한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2023.5.30, 스픽스 SPEAKS(http://www.speak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