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칼럼) 배출권 거래, 해상 운송으로 확대된다|작성자 dolce vita
유럽연합의 배출권 거래제(EU-ETS)가 더 확대된다. 4월 18일 유럽의회는 기존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손질해 해운 운송도 포함시키는 해운연료 개편안(FuelEU maritime initiative)을 승인했다. 새로운 ETS 규정에 따라 EU 회원국은 내년부터 해운 운송도 단계적으로 규제를 받게 된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탄소배출 규제를 더 강화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EU 역내를 운항하는 5천t 이상의 선박은 2024년부터 배출량의 40%, 2025년에는 70%, 2026년부터는 100%에 해당하는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EU 역외 항구가 종착지인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번 개편으로 ETS 기준 탄소 배출량은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43% 삭감에서 62%로 더욱 강화됐다.
배출권 거래제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이행 방안의 하나로 1993년 도입되었다. 탄소 감축을 많이 한 기업은 배출권을 팔수 있으니 탄소 감축에 적극적일 것이라는 판단에 기초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탄소를 많이 배출한 기업일지라도 배출권만 구입하면 되기에 근본적으로 탄소 발생을 줄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면과제인 탄소 감축을 위해서는 이 제도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으로 탄소거래시장이 만들어졌다.
기대와는 달리 탄소배출권 거래는 그동안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들면서 기업에게 무상으로 할당된 배출권조차 다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기업의 공동사업에서 감축된 탄소량은 양쪽 국가에 모두 반영되는 ‘이중 계산(double count)’과 국가 간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 폐쇄적 거래 구조도 장애물이었다.
2021년 COP26 협상에서 파리협약 6조에 대한 ‘세부이행규칙(Paris Rulebook)’이 채택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된다. 시장기능을 도입하면서 온실가스의 유연한 감축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금과 같은 추세로는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후변화 대응이 절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세계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EU 수출 제품뿐만 아니라 글로벌 운송에 발생하는 추가 비용은 우리 기업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현재 EU에서 거래되는 배출권 가격은 톤(t)당 100유로 수준이지만 내년부터 가격이 급등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해상 운송은 국제 무역의 가장 효율적인 운송 방법이지만 운송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의 3%나 차지하고 있어 탄소 감축의 ‘뜨거운 감자’였다. 탄소를 줄여야 한다는 당위에는 동의하지만 해상 운송이 포함되는 것은 비용 증가로 반대해 왔다. 하지만 이번 제도의 도입으로 새로운 전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번 유럽연합의 강력한 규제로 인해 해운업계는 액화천연가스(LNG)와 수소 에너지로의 연료 전환, 연료 소비 절감을 위한 저속 운항(slow-steam), 엔진 개조 등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이에 유럽으로 수출하거나 공급하는 업체를 가진 회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ETS 및 유사 조치가 초래할 비용 증가에 대한 합리적 대응이 불가피하다.
해운 운송의 배출권 거래제의 도입은 우리 조선업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 환경규제 강화에 따라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해야 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해운업계의 탄소 감축을 위한 노력은 글로벌 대세가 되었다. 선박 운항 효율화와 수소·암모니아를 활용한 차세대 연료 개발은 이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환경규제가 우리 조선업계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다. (2023.5.2, 스픽스 SPEAKS)